본문 바로가기

과학교양

발명과 발견의 역사 2편

라이트 형제와 비행기(1903)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새처럼 공중에 날아오를 수 있기를 꿈꿔 왔습니다. 이카루스와 다에달루스에 관한 고대 그리스 전설이 이미 날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전설에서 이카루스와 다에달루스는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등에 동여매고 이것을 이용해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맙니다.

 

15세기에 이르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처음으로 공학적인 비행 도구를 도안했습니다. 기구와 헬리콥터 그리고 낙하산에 관한 설계도를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인간이 스스로 만든 기계를 사용해 실제로 공중에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간은 자연을 연구했고 자연의 법칙을 탐구했으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인간을 땅에 묶고 있는 중력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비행기

처음으로 하늘을 난 사람은 몽골피에 형제였습니다. 이들은 1783년 11월 21일 열기구를 사용해 25분간의 비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열기구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 기구를 조정할 수 있기는 했지만 새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에는 아직 머나먼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힘에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비행 시도가 다음 단계의 진보를 이룰 때까지는 다시 100년이 걸렸습니다.

열기구

 

오토 릴리엔탈은 공중을 정복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만든 연처럼 생긴 글라이더로 몇 차례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1896년 비행을 시도하다 추락하여 죽었습니다.

 

그 몇 년 후인 1900년 7월 1일,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체펠린이 자신의 이름을 본뜬 비행기구를 타고 처녀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비행선이라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지요. 하지만 체펠린의 발명은 결코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비행선이 너무 불안정했고 움직임이 아주 둔했기 때문입니다.

 

비행에서 결정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공로는 미국 출신의 형제 오빌 라이트와 월터 라이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릴리엔탈의 실험을 세심하게 지켜보았고 계속해서 새의 비행 자세를 관찰했습니다. 비행의 비밀은 날개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이 옳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날개는 공중에 떠 있거나 미끄러지는 듯 나는 데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조종하는 목적에도 이용된다는 점을 그들은 알아냈습니다.

라이트형제의 비행 시험

 

그래서 두 사람은 비행기를 제작할 때 우선 조종에 집중했습니다. 그들 이전의 사람들은 이점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1899년에 나온 그들의 쌍엽기는 날개를 움직일 수 있어서 기울어진 상태로 날아가거나 하강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터로 작동하는 비행기를 만들기 전까지 그들은 조종을 완벽하게 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비행기에 좌우 조종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방향타를 붙였을 뿐만 아니라 고도를 조절할 수 있는 상승 키도 장착했습니다.

라이트형제

1903년 12월 라이트 형제는 특허를 신청했고, 1904년에는 모터로 작동되고 사람이 탑승한 최초의 비행이 시도되었습니다. 누가 비행기에 탈 것인지는 동전을 던져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스스로 타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토 릴리엔탈이 시험 비행을 하는 도중에 결국은 사망했으니 그럴 만도 했는데 말이지요. 거꾸로 라이트 형제는 비행에 너무나도 열광했기 때문에 이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둘 가운데 누구도 최초의 모터가 달린 비행기를 타는 한 번뿐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빌라이트가 타는 것을 결정되었고,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빌 라이트는 12초에 걸쳐 40미터 이상을 날았고, 이렇게 하여 라이트라는 이름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몇 년 후 라이트 형제는 30분에 달하는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다른 발명가들도 비행기의 발명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거나, 실제로 그들이 날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탄 비행이라는 아이디어가 결국 성공하는 데까지는 또 몇 년이 더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비행기를 아직 완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그 뒤 유럽의 발명가들이 라이트 형제를 앞질렀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비행기가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자신의 군대를 비행기로 무장시키는 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현대의 헬리콥터와 여객기

'과학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지개의 원리  (0) 2020.09.29
  (0) 2020.09.29
발명과 발견의 역사 1편  (0) 2020.09.28
인체의 가장 특별한 부분, 심장 3편  (0) 2020.09.27
인체의 가장 특별한 부분, 심장 2편  (0) 2020.09.27